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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종 작가 (chgyeognam@nate.com)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등록날짜 [ 2018년09월20일 13시15분 ]

시외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 차표를 끊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농촌은 *대목장날 내다팔 고추를 말리고 깨, 콩, 녹두를 거두고 *땡감을 우려내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아버지는 농사가 가장 잘된 벼를 따로 베어 햅쌀을 마련하고 차례에 쓸 대추, 밤을 털었다. 장날엔 동네 어른들이 장터로 총출동했다. 어머니들은 곡식과 채소를 그득그득 묶은 남산만한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도 모자라 양손에까지 들고 시오리, 이십리길을 걸어서 읍내로 나갔다.
 하루에 두세번 다니는 *시골버스에는 사람보다 짐짝이 더 많아 정말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밑지는 기분으로 서둘러 보따리를 넘기고 산적과 국거리에 쓸 고기며 사과, 배, 조기, 김 등 제수를 장만하고 나면 아이들 추석빔을 사러 장터를 쏘다녔다. 아버지는 추석 2∼3일 전 선산을 찾아 벌초를 해두었다. 어머니는 벽장에서 *놋그릇 제기를 꺼내 잿가루를 묻힌 짚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았다. 아이들은 산에 가서 송편 만들 때 쓸 솔잎을 따왔다.
 구로동 가리봉동의 *공단이나 서울 변두리, 청계천 뚝섬 인천 등 공장지대는 귀성 준비로 술렁댔다. 국민학교만 마치고 소규모 방직공장 시다나 먼 친척이 소개한 사장님집의 식모살이, 버스 안내양 보조가 되어 눈물겨운 서울살이를 시작한 누나들. ‘기술이 최고’라며 공단의 미싱사, 양복점 재단사, 자동차 정비사, 중국집 주방장이 되기 위해 얻어터지며 눈물밥을 먹던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집에 소를 사주려고 이 악물고 저축하던 철환이도, 동생 학비 부치느라 다방 한번 가지 않던 영순이도 이때만은 때빼고 광내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우정라사, 미미의상실, 칠성제화에서 새옷과 구두를 맞췄다. 이용원과 미장원에 들러 *포마드를 바르고 파마를 했다. 영등포시장, 남대문시장을 헤매며 부모님과 동생들의 옷가지와 선물꾸러미도 정성껏 준비했다.
 아무리 봉급에 인색한 사장이라도 이때만은 푸짐한 보너스로 선심을 써야 했다. 대접이 시원치 않다 싶으면 말도 없이 다른 업체로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 뒤 공단 전봇대에는 ‘공원 모집’ 공고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과 서울역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 차표를 끊었다. 늘어나는 귀성객을 실어나르기 위해 교통부에서는 추석 특별수송작전을 펼쳤고 공단에서는 단체 귀성버스를 마련해 귀향길을 도왔다. 새 양복에 모처럼 매보는 넥타이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여자들의 뾰족구두는 영락없이 발뒤꿈치에 물집을 만들어 걷기조차 고역이었다. 그래도 고향가는 길의 마음은 한가위 달덩이처럼 부풀었다. 비록 초라해 보이는 흙담장, 멋대로 자란 미루나무 감나무 한 그루도 옛날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 것이 눈물이 왈칵 솟도록 반가웠다.
 형과 누나들이 하나둘씩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어머니들도 많았다. 서울간 뒤 몇년째 소식 한줄 없는 아들 딸. 이번 추석에는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신작로를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어머니. 남들은 깡패, 호스티스가 되었다고 수군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서울 가 집장사로 졸부가 되었다는 누구네 작은아버지의 삐까번쩍한 자가용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이닥쳐 온 동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추석 전날 밤이면 가족들은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팥과 깨를 넣어 송편을 빚었다. 예쁘게 빚어야 예쁜 각시 얻는다는 송편을 정성들여 만들다보면 어느새 달이 기울고 새벽이 가까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밤을 치고 *향을 깎았다. 추석날 새벽에는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추석빔을 받지 못한 동생은 끝까지 골을 풀지 않고 떼를 썼다. 식구 수대로 사온 양말이 한 켤레씩 모자라서 형제간에 다투는 일도 많았다. 햅쌀밥과 햇곡으로 빚은 송편, 술, 과일, 나물, 전, 조기 등이 차려지면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할아버지가 중간에 서고 아버지 삼촌 아들들이 서열대로 둘러섰다. 가끔 작은아버지가 *‘홍동백서 어동육서’를 들먹이다 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곤했다. 들국화와 억새가 어우러진 성묘길에는 떨어진 알밤을 줍고 개암을 따면서 조상 산소를 돌았다.
 추석날 오후에는 국민학교 동창회를 갖기도 했다. 저녁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콩쿨대회가 열렸다. 전파사에서 빌려온 확성기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콩쿨대회의 막이 오르면 사회자는 폼을 냅다 잡아 웃겨가며 마을의 명가수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폭음탄을 터뜨리며 골목을 누볐다. 추석 다음날에는 면소재지에서 마을 대항 체육대회나 씨름대회가 열렸다. 토너먼트 방식의 씨름대회에는 보통 송아지 한마리가 걸렸다. 이런 잔치에는 으레 낮부터 취해 고향 발전 어쩌고 하며 횡설수설하는 아저씨들이 있었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읍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석 뒤풀이였다. 종일 고스톱이나 쳐대는 일은 한참 뒤에 생겼다.
 동산 위에 떠오른 한가위 달을 보며 만가지 근심을 띄워보내던 추석. 토담 안의 붉게 익은 감과 쏟아지는 맑은햇살, 객지에 흩어졌다가 모여앉은 가족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햇곡과 새 과일로 풍성했던 차례상…. 가난했을망정 넉넉하던 한가위의 풍경은 누구에게나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김석종|작가 s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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