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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기 전 거창군수 ‘비하인드스토리’ 제1편

시대의 영웅은 변방에서 비롯된다, 서부경남 변방출신 이홍기의 야망은?, 그는 소통의 달인, 상생주의자
류영수(belove04@nate.com)  등록날짜 [ 2021년06월16일 17시56분 ]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후농(後農) 김상현, 그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현 대 정치사에서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1935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김 상현은 1965년 31세에 민중당 소속으 로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7대와 8대 3선을 기록했으 나,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피선거 권을 박탈당했던 비운의 정치인이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수차 례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정계 입문 전부터 이미 김대중(DJ) 전 대통 령과 친분이 있었던 김상현은, 그의 정 치 파트너이자 조력자로 활발한 활동 을 했다. DJ의 1970년 ‘40대 기수론’ 참 여를 이끌면서 결국 DJ를 1971년 대통 령 후보로 만들어낸 정치적 거목이다. 학력은 변변치 않아 고졸이다. 논객 남 재희(전 노동부장관· 4선국회의원)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말이오, 우리나라 최고 정치 풍 운아가 누구냐 물으면 김상현이라 대 답하겠소, 나는 이 양반을 아주아주 좋 아합니다. 정치인 가운데서 내가 갖추 지 못한, 모자란 부분을 가장 풍성하게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지. 내가 좀 건조 하고 격정적이지 못하다면 그는 발랄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대의를 위해 불 철주야 뛰어다닐 수 있는 열정을 가졌 지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고, 고생스러운 가운데 그렇게 유머 러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를 조금이라도 닮아보려고 접근하는 것 이죠. 그런지가 벌써 40년, <후농 같은 사람 다섯 명쯤 있으면 정권을 도모하 겠다>고 일찍부터 말해왔었습니다. 나 는 아직도 뜨뜻미지근하고, 그는 지금 도 유쾌하고 활발합니다. 김상현은 모 르는 사람하고 첫인사 할 때 이런 말을 해요, <저는 양아치올시다. 저는 천민이 고, 상민이고, 서민이올시다> 허허 상대 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화법이지요."

남재희가 정치 풍운아 김상현을 흠모 했다면 필자는 이홍기 전 거창군수(이 하 경칭생략)를 존경하고 아주아주 좋 아한다. 필자는 이홍기라는 인물을 왜 좋아하느냐?

그는 앞서 소개한 김상현처럼 발랄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대의(지역발전· 행정)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열 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한지>의 유방처럼...

이제부터 행정가로서의 이홍기가 아 닌 정치적 인물 이홍기를 조명해보기 로 한다. 『중국유맹사(中國流氓史)』. 필자가 최근 들어 탐독하고 있는 책 이름이다. 저자는 진보량(陳保諒).

그는 북경사범대학에서 역사학을 전 공하고 현재 중국명사학회(中國明史 學會)의 이사로 있으면서 주로 명청 (明淸) 사상 문화사와 중국 사회사 연 구에 종사하고 있는 학자이다. 저서로 는 『조용히 열어젖힌 커튼―명대 문 화의 발자취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1988), 『동요하는 전통―명대 도시생 활(飄搖的傳統―明代城市生活長卷)』 (1996), 논문으로는 「명대의 사(社)와 회(會)」, 「만명의 상무정신(晩明的尙 武精神)」, 「명대 무뢰배 계층의 사회 활동과 그 영향」, 「명대 황제와 명대 문화」 등이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책 속 이 대목에서 그 만, (필자는)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우리가 잘 아는 <초한지>의 유방은 본래 패현 저잣거리의 무지랭이(중국 에서는 유맹, 협객, 강호 등 여러 표현 이 있다)에서 출발, 한(漢)나라의 황제 에까지 이른다. 또 명(明)나라를 이룩 한 주원장도 역시 떠돌이 건달에서 황 제가 되었다. 청나라 때 사서에 "대개 명 태조는 한 몸에 성현과 호걸과 도적 의 본성을 사실상 겸하여 가진 사람이 다.", "주원장은 유비에 비해 실로 한 수 더 높았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시대의 영 웅은 변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가 만히 생각해보니 이 말이 그럴듯하다. 중국공산당을 일으킨 모택동은 중국 의 최고변방 호남성 출신이다. 한국의 김대중은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영삼 은 경남 거제 섬 출신이다. 노무현은 어떻고! 김해의 변방 진영 출신이 아니 던가?

이홍기 역시 한반도의 변방 거창 군에서 농고를 나와 면학에 힘쓴 끝에 지방공무원이 되어 발군의 실력을 발 휘, 탁월한 행정가로 입신하게 된다.

언젠가 사석에서 이 홍기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보소 이홍기 군수, 이재명 성남 시장이나 이홍기 군수나 내가 보기론 말입니다. 행정가로서 능력 엇비슷한 것 같은데,

이 군수님도 야망을 한번 꿈꿔 보세 요. 우리 국민 들은 어떤 정치인들을 선호하느냐? 하면 이재명이나 이홍기 같은 철저한 변방 출신, 흙수저 이런 정치인들을 좋아해요, 왜냐? 흙수저 출 신들은 (유년 시절부터 경제적 결핍 등 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으므로) 약자 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강렬하다는 거죠,”

필자가 이런 당부(대권 혹은 경남지사 도전)를 건네자, 이홍기는 파안대소하 며, “아이고 제가 아직…많이 모지랍니 다”라고 겸손해 했다.

필자는 평소 그의 인물 됨됨이를 지 켜본 바, 그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상 생주의자라는 것이다. 상생(相生)은 음 양오행설에서, 금(金)은 수(水)와, 수 는 목(木)과, 목은 화(火)와, 화는 토(土) 와, 토(土)는 금(金)과 조화를 이룸을 이르는 말로써,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 며 다 같이 잘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루 갖 춘 사람만이 그 조화로움으로 이 세상 에 상생의 덕을 베풀 수 있읊 것이다. 누구나 세상을 혼자서만 살 수는 없 다. 하지만 누군가와 신뢰를 가지고 함 께 한다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려운 일로 무한경쟁 그리고 불신 이 사회 전반에 뻗어 있 는 현대사회에서 경쟁 이 아닌 함께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 은 아니다. 이홍기는 거창군수 시절, 조화로 운 거창군을 건설하기 위해 저자거리 에 나서 군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필 자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홍기의 군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고사성어 ‘추기급인(推己及人)’을 떠올 렸다.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제(齊)나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큰 눈이 내렸다. 제 나라의 왕 경공은 따뜻한 방 안에서 여 우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설경의 아름다 움에 빠져 있었다. 왕은 눈이 계속 내리 면 온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다워 질 것이라 생각하고 눈이 많이 내리기 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한 재상이 왕의 곁으로 다가와 창문 밖 가득 쌓인 눈 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왕은 재상에게 그 역시 설경에 도취된 것이라고 생각 하며 “올해 날씨는 이상하군. 사흘 동 안이나 눈이 내려 땅을 뒤덮었건만 마 치 봄날처럼 따뜻한 게 조금도 춥지 않 군.”이라고 말했다. 이때 재상은 왕의 여우털 옷을 바라보며 “정말로 날씨가 춥지 않으십니까?” 왕은 재상이 왜 이 런 말을 하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생각도 않고 그저 웃기만 하였다. 그러 자 재상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가 배불 리 먹으면 누군가가 굶주리지 않을까 를 생각하고, 자기가 따뜻한 옷을 입으 면 누군가가 얼어 죽지 않을까를 걱정 했으며, 자기의 몸이 편안하면 또 누군 가가 피로해 하지 않을까를 늘 염려했 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공(景公)께서는 자신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 하지 않으시는군요.”

폐부를 찌르는 재상의 말에 왕은 부끄 러워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왕은 군주로서 백성의 처지를 먼 저 살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일상에 묻혀 눈 오는 경치에만 정신을 빼앗긴 채 추위에 떨고 있을 백성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평천하는 치국에 있다 함은 윗 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모시면 백성 들 사이에 효가 흥성하고, 윗사람이 어 른을 어른으로 모시면 백성들 사이에 공손함이 흥성하고, 윗사람이 고아를 긍휼히 여기면 백성들은 배반하지 않 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추기급 인’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는 것이다.

필자는 이홍기의 군정 활동을 지켜보 면서 ‘추기급인(推己及人)’ 속의 주인 공 재상이 생각났다. 재상이 백성의 고 통을 헤아렸듯이 이홍기는 거창군민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발로 뛰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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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 혈세 함부로 쓰는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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