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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경남 류영수 대기자 備忘錄(비망록) 나의 삶, 나의 인생 - 2장

"Boys, be ambitious"
류영수(ryugod00@naver.com)  등록날짜 [ 2022년07월26일 13시21분 ]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내 인생의 전환점, 웅양중학교 담임선생님 훈계
부산 화물차업계에서 내 별명은 오추마(烏騅馬)
 

금수저, 흙수저라는 용어는 몇년전부터 쓰이는 우리 사회의 신조어다. 금수저는 부잣집 출신의 아이를 뜻하고 흙수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처럼 부모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수저 계급론’이 젊은이 사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퍼져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흙수저로는 음식을 먹기 어렵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는 자괴감이 깔려 있다. 즉 흙수저 출신들은 부모 도움 없이 자립하기 어렵고 또 가난이 대물림되기에 이런 용어가 더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몇 년전 우리는 국정농단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겪었다. 그 주인공 중 한 명의 딸은 ‘돈도 실력’이라고 말을 해 우리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제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점차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 재력에 따라 장래가 결정되고 그렇게 형성된 불평등이 그대로 대물림되면 우리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물려받은 게 거의 없는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너무나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고향에서 야반도주했건만 김천에서의 나의 생활(냉면집 시다생활)은 너무나 초라했다. 이렇게 음식배달이나 해서야 장래가 보이지 않을 것같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중학교를 마치자. 그다음 기술을  배우자,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냉면주인한테 뺨 맞은 다음날, 나는 고향땅을 밟았다. 
 
고향에 돌아왔다. 어차피 공부와는 담을 쌓던 터 였지만 아버지는 “중학교는 마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학교(웅양중학교)로 가 담임 선생님에게 잘못(가출)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담임선생님 하숙집으로 가 인사를 드렸더니,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객지에서 아무것도 못먹었나 보구나, 엣따, 내 밥 무라(먹어라)”하면서 먹던 밥을 들어주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영수야, 미국이 왜 부강한 나라인줄 아느냐? 미국에서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좌절이 아닌, 야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 정신 때문에 부강한 나라가 된 거란 말이다, 너도 너거 집이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가슴에 큰 꿈을 품고 살아라, 그렇게 살면 나중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하면서 공책에 영어 몇자를 썼다.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담임선생님은 이 글을 나에게 주며 “어렵고 힘들 때 마다 이 글을 꺼내 읽어라 알긎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교육자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년 7월 31일 ~ 1886년 3월 9일)가 주창한 말이다.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뒤에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철학자 최진석 교수 에세이를 읽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삶의 지표를 얻게 된 나는, 그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야망! 그렇다, 지금은 비록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가시덤불을 헤쳐나가 먼훗날 큰사람이 되리라, 담임선생님이 전해준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를 두손에 꼭 쥐고 나는 집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내 가슴속에서 야망!이라는 기차발통이 힘차게 전진하고 있었다.   
 
며칠전(2022년), 필자는 철학자 최진석(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에세이를 읽다가 야망이란 두글자를 발견했다.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야망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자신을 감동의 길로 인도하는 교량이다.

나는 꿈이나 비전 등과 같은 점잖은 말 대신에 일부러 야망(野望)이라는 말을 쓴다. ‘야망’이라는 단어에서는 잘 훈련된 경주마의 거친 숨이 느껴진다. 정련된 훈련만 있고, 거친 숨이 없다면, 말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 꿈을 꾸더라도 거친 숨을 쉴 수 있는 내면을 갖고 있어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쉽게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야망은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에 자기 존재의 선한 바탕을 벗어나지 않는다. 야망이 지배하면 당연히 필요가 생기고, 그 필요를 채우느라 지칠 새도 없고, 부패할 새도 없다. 야망이 없으면 쉽게 지치고 쉽게 부패한다.“

최 교수의 에세이에서 “야망”이란 두 글자를 발견한, 나는 “그옛날, 그래 나에게도 야망의 시절이 있었지…”그런 상념이 젖어들었었다.
나는 중학교 졸업직전, 다시 대처로 나가기로 했다. 아버지는 “내가 너한테 도와 줄 기 하나도 없다, 우짜든동 대처에 나가 열심히 일해라, 객지 생활이 영 마음에 안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부지캉 농사나 짓자”

이른새벽, 나는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고향집을 나섰다.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는 신발이 없어 맨발로 길을 떠났다. 행선지는 부산 거제리 큰아버지(류호음) 댁이었다, 큰아버지는 국제여객 경비원으로 일했다. 콧딱지만 한 집, 나는 사촌(딸 1 아들 5)들과 한 방에 지내면서 눈칫밥을 먹는 일이 곤욕스러웠다. 사촌들이 워낙 나를 백안시하는 바람에 도저히 큰아버지 집에 살 수가 없어 집을 나와야 했다. 





나온들 어디 갈 곳이 있나, 큰아버지가 일하는 국제여객 주차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차 안에서 도둑잠을 잤다. 이곳에서 마음씨 좋은 운전기사를 만났다. 

기사는 나에게 “운전을 배워라, 그라몬 평생 먹고 산다”며 시간 날때마다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열심히 배웠다. 1971년 5월, 울산여객 버스정비공으로 취직했다. 여기서도 열심히 일했다. 마침내 1972년 겨울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이후 나는 1973년 김천시내 트럭조수, 1973년 거창에서 택시운전기사를 했다. 그해 추석, 부산에서 최동원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운전 잘한다는 소문이 부산바닥까지 자자하더라, 급여 따불로 줄 터이니 우리 회사에 오라”고 한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부산서 서울로 트럭 2,5톤 몰고 운전하는 기라, 이사짐, 공장기계, 섬유제품 서울로 보내는 일 하능거라”  

당시 부산 화물차 업계에서 내 별명은 오추마(烏騅馬)였다. 오추마란, 초패왕 항우의 애마를 말한다. 삼국지의 여포가 타고 다녔다는 적토마와 더불어 명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오추마 류영수는 부산∼서울을 오가면서 부산 화물차 업계 성실근면한 운전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1973년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열거하면.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의 최대 정적인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해 도쿄 시내에서 벌인 이 만행으로 한일관계는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10월 17일에는 제1차 오일쇼크(유류파동)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물가상승률은 수직 상승했고, 성장률은 떨어졌다.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에너지 수요가 많은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후 폭풍은 2년간 지속했고, 한국경제는 1976년에서야 비로소 정상을 되찾았다. 

이 해에 크게 인기를 끈 남자가수 노래로는 <그대여 변치마오>ㆍ<젊은 초원>(남진), <사랑의 모닥불>ㆍ<마지막 편지>ㆍ<잊으라면 잊겠어요>(이용복), <잘 있어요>ㆍ<잊지마>(이현), <사랑과 우정>(이상열), <모정의 세월>(한세일), <흙에 살리라>(홍세민) 등이 있었다. 여자가수의 노래로는 <그럴 수가 있나요>(김추자), <사랑이여 다시한번>(패티김), <영암아리랑>ㆍ<쌓인 정>(하춘화), <사랑의 의지>(이수미), <기다리게 해놓고>ㆍ<자주색 가방>(방주연), <안녕하세요>(장미화) 등이 있었다. 번안곡 <아름다운 일요일>(문정선)과 <봄이 오면>(장미화)도 사랑을 받았다.  

<그건 너>(이장희), <사랑의 진실>ㆍ<작은 새>(어니언스), <화>(4월과 5월), <토요일 밤에>ㆍ<목장길 따라>(김세환), <새 색시 시집 가네>(이연실) 등의 포크음악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음 해에 불어올 ‘포크송 광풍’을 예고했다.
 
나는 서울로 향하는 트럭 운전대를 잡고 신나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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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453회ㆍ201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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