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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풍류정에는 국악의 언어가 있다

화조풍월花鳥風月 그 현장
신수범(donoin@naver.com)  등록날짜 [ 2014년03월21일 10시00분 ]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풍류회>는 어떤 모임입니까?”

필자는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질문부터 했다.


“사전에 보면 풍류를 속된 일을 떠나 멋스럽게 노는 일 즉 화조풍월花鳥風月이라 하고 또는 운치스러운 일 혹은 음악을 예스럽게 일컫는다라고도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 문화의 음악 언어를 다시 일구고 보급하자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뜻을 가지고 일상에서 즐기고 모여서도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지요.”


필자가 풍류정을 알게 된 것은 거창으로 귀향한 2011년 <거창풍류회> 송년 자리에 참석하고 부터이다. 이날 저녁 KBS 국악대상 수상자이자 전남대 교수인 전인삼 명창과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을 받은 채수정 명창도 자리를 함께 했다. 국악계의 산증인 최종민 동국대(현재) 교수, 보광사 주지 스님, 거창의 소리타래 소리꾼들, 광주에서, 전주에서, 서울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수원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거창 풍류객들이 모여 있다. 비록 국악이 양악에 눌려 있다고는 하나 전국 곳곳에 국악을 사랑하고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첩첩산중인 거창하고도 깊은 골인 보해산 기슭의 풍류정에 두 명창이 와 있다는 게 놀라웠다.


국악이 새로이 힘을 얻고는 있다고 하지만 양악에 비하면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정도다. 더구나 국악으로는 척박한 경상도 거창에서 소리를 하고 즐기는 풍류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명창이나 소리꾼들이나 이제 막 소리를 배우는 어른들이나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섞여 노래하고 즐기는 모습이라니.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풍류정을 찾아갔다. 그날은 주인 내외만 풍류정을 지키고 있다.


바깥주인은 이광수(촌장님)씨이고 안주인은 장현순씨다.


바깥주인은 촌장님으로 통한다. 다들 그렇게 부른다. 필자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촌장님이라 부른다. 촌장님 내외와 장뇌삼 오양주 한 병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풍류정을 찾아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아 따로 한적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이날 처음으로 풍류정의 지나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촌장님. 풍류회는 어떻게 시작 되었습니까?”

 

“2005년이지요, 아마. 임동창 선생이 해인사 <화엄만다라음악회>를 마치고 거창 풍류정을 들렀을 때 국악의 척박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풍류회>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모임을 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 끝에 만들었지요. 상징적인 공간은 <풍류정>으로 하자 했고요. 지금은 풍류정이 세 곳으로 늘었어요. 하나는 양은보씨가 운영하는 제주도 카멜리아 힐CAMELLIA HILL 동백언덕이고 장석열 목사를 축으로 충남 금산에 풍류정을 만들었어요.”


“이곳에 처음부터 자리를 잡고 사시던 곳입니까?


“그 이야기를 다 하자면 긴데...“


촌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요 아래 가조가 고향입니다. 군청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영덕으로 갔어요. 영덕에 무슨 연고가 있어서 간 것이 아니고. 첩첩 산중에서 살다보니 너른 바닷가에서 한세상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닷가를 훑고 다니다가 필이 꽂히는 곳이더군요. 그래서 자리를 잡았어요. 거창에서 공직 생활을 할 때 사진 촬영과 수석 수집에 열중하고 있었던지라 영덕에서도 그 일을 주로 했지요.”

전경


풍류정은 한옥 다섯 채로 구성되어 있다. 집 안팎으로 수석이 많다. 그리고 그림과 사진이 많이 보인다. 모두 수준급이다. 사진과 수석이 많은 까닭을 절로 알게 되었다.


“당시 영덕을 조금 더 들여다보니 문화, 예술이 거창보다 뒤떨어져 있는 게 보였어요. 안타깝기도 하고. 내일이 아니다 여기며 살았는데 사람 사는 일이 또 그렇잖아요? 이런 저런 사람들을 알기 시작했는데....:


안주인이 한 마디 거든다

“홀가분하게 한 세상 살자시더만...”


“허허. 사람 일이 어찌 마음먹는 대로 되던가.”


아내를 바라보는 촌장님의 눈길에 애정이 그득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진을 하다보니 그쪽 예인들도 절로 만나게 되고. 그 즈음 지자체로 정부 체제가 바뀔 때 영덕에서도 군 행사를 시작했어요. 그게 <영덕 복사꽃 대게 축제> 였는데 그 일에 참여를 하게 되었어요. 필요하니 영덕예술협회를 만들게 되었고. 허? 이런 이야기를 다 해야 하나?
 


촌장님은 지난 이야기하는 게 머쓱한지, 추억이 일어서는지 중간중간 말을 끊는다.


”행사를 하면 자연히 예술인들이 동원되고. 거기서 임동창과 장사익 그리고 김덕수를 만났어요.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95년도 11월이지 아마. 포항 MBC에 근무하는 피디 후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 주선으로 이 사람들과 의형제를 맺었어요. 그 인연이 오늘까지 오게 되었고. 그 이후 내로라하는 많은 사람들과 안연을 맺게 되었어요.

시간차는 있지만 몇 년 후에 전인삼 명창과 채수정 명창을 만나 호형호제하며 지내게 되었고 원광대 교수인 김동원 고수, 가수 이동원, 인간문화제 김청만 고수, 당시 국악한마당 진행자인 동국대 최종민 교수, 변진심, 타악그룹 동남풍, 재즈 유미경, 대금 이생강, 대금 이삼, 춤꾼 고진무, 박일화 전남대 교수 그리고 아무튼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감사히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고향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듭디다. 영덕이 제2의 고향이지만 원 고향으로 돌아가서 미미한 힘이나마 국악을 일구고 보급하는 산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2003년, 고향으로 돌아온 촌장은 풍류정을 짓고 운영할만한 자리를 찾아 거창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 끝에 찾은 곳이 고향 마을 인근 보해산 기슭의 지금 자리를 만난다. 풍류정 본채를 짓고 터를 가꾸던 2005년, 집 앞 너른 터에다 감자를 심었다. 감자꽃이 한창일 때 가야산 해인사에서 행사를 마치고 온 임동창이 풍류정으로 온다. 정자에 앉아 감자꽃을 보고 있던 임동창이 두 가지를 제안한다.


“형님, 거창 특히 가조 땅이 참 좋습니다. 나도 여기 살고 싶은데 집 한 채 지어주세요. 그리고 여기서 감자꽃 축제를 합시다.”


그래서 풍류정 본채 옆에 임동창이 살 집을 짓고 함께 감자꽃 축제를 삼 년 동안 두 번 연다. 임동창은 풍류정에 머물면서 거창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이해와 전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애쓴다. 음악에 관심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음악회도 연다. 샛별초등학교 아이들과 <고추잠자리>라는 곡을 만들기도 하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한 줄씩 작사를 하고 작곡은 임동창이 하여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이 아이들을 출연시키기도 한다.


“임동창 선생이 거창을 위해 나름대로 애 많이 썼어요. 그이도 어느 한 곳에 머물 팔자가 아닌지 다시 갈 길을 갔어요. 풍류정과 정리를 한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자 대문을 벗어나 있는 겁니다. 언젠가 거창에서 여생을 마치겠노라 하고 돌아올 겁니다.”


“그런 분이 거창에 다시 정착하시면 꿈나무 아이들에게는 큰 등불이 될 텐데요.”


“풍류정을 지키는 보람은 큽니다. 전인삼, 채수정 명창이 여기서 동편제 심청가 복원작업을 했어요. 동편제는 서편제와 달리 웅건 호방해요. 그런데 이런 창법보다는 서정적인 애원성과 슬픈 계면조의 서편제가 성해지자 동편제 창법을 잇는 소리꾼들이 드물어졌어요. 이런 풍토에 전인삼 명창과 채수정 명창이 그 복원 작업을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두 분이 모든 시간을 여기서 보낸 것은 아니지만 대를 잇지 못하면 소실 될 작업을 여기서 해냈다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깁니다.”


“그나저나 감자꽃 축제를 두 번만하고 그만 두셨습니까?”


“아, 그만 둔 게 아니고요. 타이틀이 바꿨어요. 감자꽃축제에서 연꽃축제로. 감자밭을 연밭으로 만들었는데 연꽃이 연밭 가득 필 때부터 연꽃축제로 이름을 바꾸고 행사를 했지요? 그렇게 한지 벌써 작년(2012년)까지 8회째가 되었네요.”

연꽃축제


“이런 행사를 하는 연유가 있습니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국악 너무 참담해요. 그나마 요즘 약간의 기운이 생기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 정도로는 안타깝지요. 국악 부흥을 글로벌 시대에 무슨 발상이냐 라거나 국수주의 운운하는 말이 간간이 나오는데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요. 국악 부흥은 이런 질시의 표현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깁니다. 국악은 우리 민족문화의 음악언어입니다.”


“행사를 통해 저변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됩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와 직결되는 이야긴데요.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 이어주지 못했어요. 교육도 문제고 교육자들도 문제라고 여깁니다. 우리 문화는 학교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익히는 것이거든요. 음악을 놓고 말한다면 민요가 그 대표적인데 언젠가부터 우리 민요는 사라지고 말았어요.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국가의 잘못이지요.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기운이 있을 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축제를 열고 싶었어요. 그것이 풍류정의 연꽃축제입니다. 점잖게 앉아서, 들려주는 연주를 감상하는 서양식 축제가 아니라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어우러져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섞이는 동안 선인들이 하던 일상의 멋이 어떠했는지 복원해보는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촌장님은 돈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돈은 무슨....”


“제가 알기로도 연꽃축제 때 쟁쟁한 분들이 출연하고 전국에서 많은 풍류꾼들이 오는데 행사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요? 후원 받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정상적으로 행사를 한다면 돈 많이 들어요. 연꽃축제에 모시는 초청 인사들 출연비만 해도 정상적으로 주려면 수 천만 원도 더 들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출연료를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고요. 이런 산중에서 국악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가 열린다는데 오히려 감사하다며 초청에 응해요. 처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채비 정도 주는데도 안받겠다하여 여간 곤혹스럽지 않답니다. 어떤 분은 받는 척하고는 어디다 그 봉투 놓아두고는 돌아가는 도중에 전화를 해요. 그 돈 어디에 놓아두었으니 잘 쓰시라고.”


“그러면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요?


”결국 돈이지요. 음식 장만 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요. 그러나 그런 정도는 행사에 오신 분들의 십시일반으로 충당하거나 모자라는 대로 버틸 수 있는데 방송 장비 대여는 고스란히 나가는 돈이기 때문에 행사 마치고 정산하면 5 백만원 정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합니다.”


“벌이가 따로 있으신가요?”


“풍류정은 이 땅의 풍류객들이 머무는 펜션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이용해주셔서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게 주 수입원이지요. 그 좋아하던 사진도 수석수집도 한옥 짓는 일도 다 접었습니다. 풍류정 지키는 일만 할랍니다. 그리해도 품위는 지키며 삽니다. 다행히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군에서도 약간의 지원을 해주기 시작해서 숨통이 조금 트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탓할 일도 없지요. 욕심 같아서는 군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하.”


촌장님은 마지막 말을 해 놓고는 손사래를 친다. 그 이야기는 혼잣말이니 쓰지 말란다.


“힘닿는 데까지 하겠지만 형편 때문에 연꽃축제를 접어야 할 일이 생길까 걱정이 커긴 합니다. 그런데요. 소리를 모르는 분들도 입소문을 듣고 오는 바람에 해마다 인원이 늘어납니다.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는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지요. 행사장에는 아이들이 많이 와요. 어른들을 따라 온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일상에서 만나는 모습이 아닙니다. 축제를 함께 하는 아이들의 그 밝은 보습을 보면 끝까지 이 축제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이렇게라도 아이들의 내일을 열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다른 곳에서 접하지 못하는 우리 가락이 얼마나 사람을 흥겹게 하는지, 슬프기도 한 지 온몸으로 익히게 하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거창풍류정은 거창읍내에서 살피재를 넘어 가북으로 좌회전하여 승천하려는 용들이 요동치는 분지의 섬, 용산숲을 지나 한 2km 달리다보면 가조와 가북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작은 내 건너 보해산자락에 낮게 엎디어 있다. 대구방면에서는 88고속도로 가조 분기점을 빠져 나와서 가조 면내를 지나 가북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용산숲을 만나고 풍류정에 이른다.
 


풍류정은 거창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가 되어 있다. 거기에 가면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풍류정의 시간과 공간 안에 들어 선 영혼들은 삶의 절정을 맛보고 돌아간다. 둘이 앉으면 다향으로 셋이면 소리로 넷이면 춤사위로 그리고 열, 스물로 바람같이 사람들 모여들면 잠든 연꽃도 화답하며 벌어지는 곳, 거기가 풍류정이다.


“아이들에게 우리 음악의 언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흥겹고 인간적인지 한 번이라도 접하게 하고 싶은 게 연꽃축제를 하는 이유가 큽니다. 다른 하나야 당연히 같은 하늘을 이불 삼아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끼리의 교류지요. 그게 풍류 아닙니까?”


풍류정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없다. 펜션 이야기, 풍류정의 술 오양주 이야기도 해야 하고 연꽃차, 연잎차, 풍류정의 정갈한 음식들. 오늘은 촌장님의 뜻을 가슴에 새겨듣고 일어선다.


풍류정을 알고 난 이후 시간이 나면 자주 찾아간다. 사계절 내내 정취와 사람 내가 곰삭는 풍류자리를 오래 떠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봄날에는 천양으로 일어서는 기운들과 저마다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산천을 볼 수 있어 그 안의 사람들은 절로 설레게 된다. 욕심대로 이고 나온 꽃 봉우리들을 탓하지 않는 풍류정의 봄날은 단가 한 곡 부르다보면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그리고 골골마다 내마다 목청껏 장, 단의 소리에 빠져드는 긴 여름이 오면 연밭에는 새벽부터 연꽃잎 터지는 소리가 종일 들린다. 처음에는 귀를 간지럽히듯 들리지만 듣다보면 천둥처럼 커진다. 연꽃잎 벌어지는 소리는 보해산골짜기를 쏘다니다 그도 양이 차지 않으면 가북으로 달려가 가야산 자락에서 놀다 사라진다.

풍류정에서 달궈진 여름은 보해산과 저 멀리 가야산까지 붉게 물들여 놓고는 슬그머니 가버린다. 풍류정 정자 관하심에 앉으면 가야산 뒷머리 보해산의 가을이 백발이 될 때까지로 곱게 익어가는 걸 볼 수 있다.

풍류정의 겨울은 그냥 겨울이다. 눈이라도 쌓이면 세상의 뿔이란 뿔 죄 덮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눈 온 날 풍류정 갈 일 있으면 눈 밟는 소리 나지 않게 걸어야한다. 풍류정이 깨어나면 세상이 다 깨어나니까. 
 



풍류정 펜션 ; 010- 9331 -1700

거창군 가북면 가북로 473-54 (구 주소 : 가북면 용산리 9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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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453회ㆍ201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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