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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고향

외갓집 가는 길
장정숙(test@test.com)  등록날짜 [ 2014년03월25일 11시48분 ]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쯤 있을 법하다.
내겐 거창에 대한 그것이 가장 깊은 바닥에 자리한 듯싶다.
내 기억 속의 거창은 한 마디로 풍요롭고 따스한 외가이다. 살면서 겨우 두어 번 갔던가.
그런 곳이 이렇게 오래도록 내게 따뜻하게 살아오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창을 떠올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미소부터 살아난다.
내가 거창을 처음 본 건 8살 쯤 이었을 거다. 나는 우리 집에서 7남매 중 유일하게 거창이 아닌 대구에서 태어난 막내였다.
그래서 지금 말로 늦둥이였던 탓에 늘 엄마 치마 끝에 달려 다니던 처지였다.그 때 외가의 혼인 잔치에 초대 받은 엄마의 손을 잡고,
지금 얘기하는 이 추억의 길을 따라 간 것도 그 덕분인 셈이다. 지금 내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겼으니 당시 거창은 우스개로 한국의 아프리카라 불릴만치 오지였다.
서 너 번도 더되게 시외버스를 갈아타다가 마지막 버스에서 내린 곳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하얗게 딴딴하던 흙 길이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르는 하얀 신작로 위였다.
산만큼이나 흙먼지를 털어놓고 버스가 떠나자 엄마는 어느 새 걷고 있었다. 11월의 초 쯤의 신작로는 어린 내 눈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직선 그 자체였다

거창에서 합천 가는 길

거창재래시장 풍경

거창재래시장 풍경




내 뿌리의 주소




길 양쪽으로 키 큰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열 지어 선 들판 가운데의 직선
. 그 위에 두 점이 움직였던 셈이다.
엄마는 빨랐다. 오랜만에 친정에 오는 설렘이었을지 빨리 저무는 초겨울 날씨를 염려해서였는지 내 손도 놓은 채 저만치 앞에서 하얀 양산으로 자꾸 멀어져 갔다.징징 거리며 아무리 따라가도 서고 가고 하는 엄마를 따라잡지 못하고 어찌 어찌 반 울음으로 외숙모 집 울타리에 들어선 건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였다.
집안은 온통 잔치 분위기로 사람들과 음식냄새로 흥성거렸고 엄마는 친정 식구들과 어울려 어느 새 부엌에서 마루로 방으로 오가고 있었고 난 처음 보는 외가 형제들 사이에 어설프게 놓여 있었다. 도시에서 온 계집애를 놓고 열도 더 되는 걱실한 오빠 언니들이 기웃거리며 웃어주었다.하나 그도 잠시 엄마들이 부엌에서 왁자하니 전을 지지고 술을 거르는 새 우리 아이들은 몽땅 언덕 하나 너머 작은 외삼촌네 과수원으로 몰려갔다.난 그 곳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화투놀이 하는 걸 보았고 화투의 짝 맞추기를 배웠다.
열 몇 살 남짓 된 오빠들은 어느 새 잔치집의 고깃그릇, 지금 기억엔 쌀 뒤주 같은 곳에 갓 잡은 소며 돼지 고기들이 가득 했던 듯 싶다. 그 뒤주에서 고기들을 잔뜩 싸가지고 와 굽고 떡이며 전도 각자의 주머니에서 슬금슬금 나왔다. 또 나는 안채에서 떨어진 깜깜한 화장실에 갔다가 환한 달빛아래 오소리가 나타나 소리지르고 기겁하여 오빠들이 몽둥이를 들고 난리를 쳐 댄 그런 밤이기도 했다. 잔치가 끝난 다음 날인가 해서는 산골짝에 노루몰이를 한다며 나를 꼬리 끝에 달고 나서기도 했다. 그 날 사촌들의 그 분산스럽던 행렬이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 후엔 중학교 일학년 방학 때 던가. 엄마를 졸라 다시 외가에 갈 수 있었다.
여전히 다정한 외가 어른들과 오빠들의 친절에 행복한 겨울 들판을 체험 할 수 있었다. 그 때 이후 이런 저런 시간의 리듬 속에 살다보니 다시는 거창에 가지 못했다.
지금도 거창 사투리가 유난히 정 스럽고 거창을 떠올리면 따뜻한 무언가가 마음 저변에서 일어서는 건, 아마도 그 어린 시절 기억 속 잊혀지지 않는 그 때의 즐거움이며 행복감이 거창의 마지막 기억이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이제 시간 속에 거창도 흘러 어디서고 자연 외엔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사촌들도 도시로 다 떠나고 나의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도 거의 돌아가시고 안계시다.하지만 내게 거창은 마음에 빛바래지 않는 한 풍경으로 양각된 채 날마다 뚜렷하다.
가끔 살이가 힘들 때 슬며시 꺼내보면 달콤한 사탕 맛 같은 추억이다. 그러나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거창군 거창읍 동동 711번지, 아버지의 본적이었다가 내 형제들의 본적이며 결혼 전까지 모든 서류에 어김없이 적어내던 나의 본적이 내 뿌리의 주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창, 내 생에 늘 함께 하는 아름답고 고마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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